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버트 후버 (문단 편집) == 평가 == 대공황의 여파 덕분에 당연히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도 박한 편이다. 업적 평가를 하면 대부분 하위권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20세기 때도 중하위권 정도였으나, 21세기에는 타일러, 필모어, 윌리엄 해리슨, 테일러와 함께 밑에서 10위권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대공황에 기인한 평가 절하가 너무 심하다보니 다른 공적들이 무시당하는 경향은 있는데, 분명 후버는 '''위대한 엔지니어'''라는 별명도 붙었을 정도로 행정업무에 있어서 대단히 유능한 능력자였다. 그렇기에 많은 기대를 받고 백악관에 입성했던 것. 허나 그가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대위기를 맞아 대처했던 행동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다. 물론 당시엔 유효수요 이론도 없었고 [[세의 법칙]]이 정설처럼 통하던 [[김영삼|시절이니 그로선 억울한 점도 있겠지만,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데도 손놓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비판받을 대목.]]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 특히 위기 때의 지도자보다는 행정관료가 더 적합한 인물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원복]]도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능력은 있지만 위기에는 적합치 않은 지도자라고 평했다.[* 그림을 보면 봄이 왔는데도 스키를 타려 하는 모습인데다, 심지어 봄이라는 계절을 탓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대공황 시기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또한 지도자가 아무리 수완이 있어도 시대를 잘못 만나거나 위기 상황에 잘못 대처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대통령이라고도 볼 수 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비판하긴 했지만, 사실 후버는 전임 쿨리지처럼 대놓고 자유방임주의자는 아니었다. 당장 [[1929년]] 그가 주장한 첫 법률은 수입농산물에 특별 관세를 부여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대공황이 터지자 같은 시기 주장된 공산품 [[관세]]를 평균 59%, 최대 400%까지 올리는 일명 스무트 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 [[1930년]] 6월에 통과되었다. '관세인상을 가정상비약으로 여기는 미국 공화당의 전통'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아이러니하지만 실제로 오랜 역사 동안 관세를 지지하는 보호무역 중상주의 정당이 공화당이었고, 거꾸로 관세를 반대하는 자유무역 기조 정당이 민주당이었다. 사실 19세기~20세기 초반만 해도 양당의 성향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고 계파도 짬뽕이었기에 이런 흐름은 [[1930년대]]까지도 이례적이진 않았다. 한편, 이 관세법은 [[한국경제신문]] 등이 즐겨 인용하는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에겐 신나게 까이는 정책 가운데 하나로, 심지어는 [[금본위제]] 붕괴와 [[제2차 세계대전]]도 이 법으로 인한 세계 무역 감소가 원인이라는 상당히 과격한 주장도 있다. 그들이 후버를 비판하는 논지는 후버가 관세에 거부권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점. > "대공황이라면 흔히 1929년 10월29일의 주가 대폭락을 떠올린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다우지수는 이듬해 봄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고 투자와 소비 지표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그해 5월 공황 종료를 선언했겠는가. 하지만 한 달 뒤다. 스무트-홀리 법으로 모든 게 망가지고 말았다... 경제사가 존 스틸 고든은 대공황은 1929년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1930년 6월17일 스무트-홀리 법에서 시작됐다고 단언한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80366161|#]] 물론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이야 "대공황은 자유방임과 버블 때문이다"라는 통상의 평가를 뒤집는 데 학자로서의 생명을 거는 수준이므로, '알아서 조정될 시장의 버블을 관세법이 터트려서 공황이 시작되었다'는 주장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대공황 이래 자유방임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건 [[스태그플레이션]]이 휘몰아친 40년 후였으니 이를 갈 만은 하다[* 물론 전세계가 [[대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뒤로는, [[자유방임주의]]를 포함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학계에서의 입지는 수직 하락하는 걸 넘어서, 아예 [[내핵]]으로 처박히고 있는 상황이다(...). ~~자무룩~~]. [[러시아]] 대통령을 지낸 [[보리스 옐친]]과 생김새나 행보가 비슷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고전적인 비유를 하면 '[[선조(조선)/평가|치세에는 능신, 난세에는 암군]]'에 가까운 유형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 점에선 [[고르바초프]] 아닌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